지리산의 무세요, 불식촌음(不息寸陰)의 삶으로 던지는 질문
지리산 자락 쌍계사의 새벽종소리와 함께 74년 수행인생을 살다가신 스님이 계십니다. 쌍계총림 초대방장이시고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내신 고산 혜원 대종사이십니다. 그분 자서전 지리산의 무쇠소는 단순 회고록이 아닌 한인간이 어떻게 하루하루를 대했는지에 대한 마음가짐입니다. 이 책과 고산큰스님의 인생에 대해 우리가 배워 볼 수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아보겠습니다.
'무세요'라는 이름이 담은 뜻
자서전 제목에 등장하는 '무세요'라는 표현은 예사롭지 않습니다. 무쇠로 만든 소는 지치지 않고, 흔들리지 않으며, 묵묵히 자기 길을 갑니다. 고산 스님의 삶을 들여다보면 이 비유가 왜 붙었는지 이해가 됩니다. 15세라는 어린 나이에 출가한 이후, 스님은 참선과 경전 공부, 계율 연구를 두루 섭렵하며 평생을 수행에 바쳤습니다. 화려한 명성보다는 묵직한 실천을 택한 삶, 그것이 바로 '무세요'라는 별칭이 어울리는 이유일 것입니다.

불식촌음(不息寸陰) —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
고산 스님의 삶을 관통하는 하나의 정신이 있다면 바로 '불식촌음'입니다. 한 치의 시간도 쉬지 않는다는 뜻으로, 순간순간을 소홀히 하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실제로 스님은 선(禪), 교(敎), 율(律), 차(茶), 범패(梵唄)라는 다섯 가지 수행 영역을 일상 속에서 함께 실천하며 이 정신을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어느 한 가지에 머무르지 않고 여러 수행을 동시에 이어간다는 것은, 매 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겠다는 다짐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 네 글자는 스님이 입적한 뒤 세워진 부도탑의 이름으로도 새겨졌습니다. 후학들이 스승의 가르침을 몸과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라는 뜻에서였다고 합니다. 말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준 가르침이었기에, 그 무게가 더욱 크게 다가옵니다.
지리산과 쌍계사, 그리고 한 사람의 발자취
고산 스님은 1975년 쌍계사에 들어와 원적에 들기까지 이곳을 지켰습니다. 허물어져 가던 절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쌍계사를 한국 전통차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게 한 것도 스님의 공로 중 하나입니다. 참선의 자리이면서 동시에 차를 나누는 공간, 계율을 지키는 도량이면서 동시에 범패가 울려 퍼지는 장소. 고산 스님이 일군 쌍계사는 여러 수행의 결이 한데 어우러진 곳이었습니다.
자서전 『지리산의 무쇠소』에는 이러한 스님의 발자취와 함께, 격동의 한국 현대 불교사를 몸소 헤쳐 나간 한 수행자의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1999년 조계종이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총무원장을 맡아 종단을 안정시킨 이야기 역시 그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목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남기는 질문
'무쇠소'처럼 흔들림 없이, '불식촌음'의 마음으로 하루를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고산 스님의 삶은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오늘 하루를, 이 한 시간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는가. 바쁘다는 핑계로, 혹은 게으름으로 흘려보내는 시간은 없었는가.
거창한 깨달음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작은 실천 하나하나가 쌓여, 결국 흔들리지 않는 무쇠소와 같은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마치며
『지리산의 무세요』는 한 고승의 개인사이자, 동시에 시간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책이기도 합니다. 지리산의 사계절을 지켜보며 평생을 수행에 바친 고산 스님의 이야기는, 빠르게 흘러가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물음을 던집니다. 기회가 된다면 이 자서전을 직접 읽어보며, 스님이 남긴 '불식촌음'의 의미를 각자의 삶 속에서 되새겨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