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범어사 여행기 | 동산 스님의 '감인대' 가르침을 만나다
견디고 참고 기다리라, 부산 범어사에서 만난 동산 스님의 가르침
부산여행에 범어사를 산책하는 것은 좋은 선택입니다. 해인사, 통도사와 함께 오랜세월 수많은 고승을 내어온 수행도량으로 동산스님과 인연으로도 유명합니다. 동산스님의 가르침과 삶에 대해 이야기해봅니다.

금정산이 품은 천년 고찰, 범어사
범어사는 신라 문무왕 때인 678년, 의상대사가 화엄십찰 중 하나로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금정산이라는 이름부터가 흥미로운데, 산꼭대기 우물에 금빛이 서려 있고 그 물속에서 하늘의 물고기가 노닐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래서 산은 금정산, 절은 물고기를 뜻하는 범어사(梵魚寺)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절 입구로 들어서면 세 개의 문을 차례로 지나게 된다. 첫 번째는 조계문, 두 번째는 천왕문, 세 번째는 불이문이다. 안내판에는 불이(不二)란 있음과 없음, 삶과 죽음처럼 서로 다른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중도적 관점을 뜻한다고 적혀 있었는데, 문 하나를 지날 때마다 마음이 한 겹씩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경내에는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과 삼층석탑, 그리고 등나무 군락이 어우러진 산책로가 있어 천천히 걸으며 둘러보기에 좋다. 특히 가을 단풍철에는 경내 전체가 붉게 물들어 사진 명소로도 인기가 높다.
대나무 숲에서 깨달음을 얻은 동산 스님
범어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동산 스님(1890~1965)이다. 서울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수재였던 그는 3·1 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용성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고, 이후 범어사에 머물며 한국 근대 불교의 큰 흐름을 만든 인물로 평가받는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동산 스님은 범어사 선원에서 정진하던 중, 방선 시간에 뒤뜰 대나무 숲을 거닐다가 바람에 흔들리는 댓잎 소리를 듣고 문득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그 소리에서 오랫동안 짓누르던 의심이 한순간에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후 그는 범어사에 선찰대본산의 격을 갖추는 데 힘을 쏟았고, 조계종 종정을 세 차례나 지내며 종단의 기틀을 다졌다. 성철 스님을 비롯해 지금까지도 이름이 회자되는 여러 수행자들이 바로 그의 제자였다.
감인대, 견디고 참고 기다리라
동산 스님이 남긴 가르침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말은 '감인대(堪忍待)'다. 견디고, 참고, 기다리면 세상에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는 뜻으로, 지금도 범어사 곳곳에 이 세 글자가 걸려 있다.
거창한 말이 아니라 오히려 담백해서 더 마음에 오래 남는다. 살다 보면 조급함에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순간이 많은데, 그럴 때마다 '견디고, 참고, 기다리라'는 이 짧은 문장 하나가 생각보다 큰 위로가 된다. 동산 스님은 6·25 전쟁 당시 피란민들을 범어사로 받아들여 정성껏 돌본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어려운 이들에게 늘 나누는 마음으로 대했다고 전해진다. 감인대라는 가르침이 단순한 수행자의 좌우명을 넘어 삶을 대하는 태도로 널리 사랑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듯하다.
범어사 여행 정보
- 위치: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
- 입장료: 무료
- 교통: 도시철도 1호선 범어사역에서 90번 버스 환승 후 범어사매표소 정류장 하차, 도보 약 5분
- 주차: 절 인근 주차장 이용 가능 (유료)
- 추천 시기: 등나무 꽃이 피는 5월, 단풍이 물드는 10~11월
경내를 다 둘러보고 나오는 길, 절 뒤편 대나무 숲을 잠시 바라보게 됐다. 동산 스님이 들었다던 그 댓잎 소리는 지금도 여전히 바람이 불 때마다 들려온다. 특별한 것 없는 그 소리가 누군가에게는 평생을 관통하는 깨달음이 됐다는 사실이, 범어사를 나서는 발걸음을 한결 가볍게 만들어 주었다.